* 쿡앤셰프 <이주현 셰프의 인생레시피> 칼럼 (2021.6.8)
“겹겹이 쌓인 시간이 만든 진한 보라색 '가지고기 덮밥'”
며칠 전, 퇴근하고 집에 돌아오니 현관에 웬 박스가 떡 하니 놓여있다. 우리 집에서는 볼 일이 별로 없는 엄청난 크기의 택배 박스다. 놀라움도 잠시, 얼마 전 귀농을 한 큰외삼촌이 보낸 선물이라는 걸 깨닫고 반가움이 뒤따랐다. 몇 겹이나 칭칭 둘러싼 박스 테이프를 떼어내는데도 한참이 걸린다. 혹시나 배송 중 박스가 터지진 않을까, 삼촌의 따듯한 염려가 두꺼운 테이프에 아직 그대로 묻어 있는 듯하다. 박스를 여니 묵직한 흙냄새가 매캐하게 올라왔다. 오랜 시간 동안 도시 생활을 해온 삼촌이 익숙지 않은 시골에서 직접 키워낸 각종 채소가 커다란 박스 안에 쌔근쌔근 잠들어 있었다.
마트에서 파는 채소가 깨끗하게 세수도 시키고 때 빼고 광 낸 도시 아이라면, 삼촌이 보내준 채소는 흙밭에서 막 뛰어놀다가 엄마 손에 이끌려 와 아직 꼬질꼬질한 티를 못 벗은 개구쟁이 아이 같다. 크기도 제각각이고, 울퉁불퉁한 채소들이 어쩐지 더 건강하고 활기차 보인다. 똑같은 모양이라고는 찾기 힘든 채소 틈바구니에서 유독 선명한 색의 채소가 눈에 들어왔다. 흙 한 톨도 묻어 있지 않은 진한 보라색의 가지였다. 은은하지만 진한 보라색 광택을 내는 길쭉한 가지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잘 빠진 최신형 스포츠카가 떠올랐다. 그래, 오늘 저녁 식사 주인공은 너다. 옹기종기 모여 있는 채소 가족들 틈에서 가지 두어 개를 빼내 부엌으로 향했다
가지는 영양분이 껍질에 많이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깨끗하게 세척하여 껍질채 먹는 것이 좋다. 이 사실을 알면서도 잔류농약이 걱정되어 늘 껍질을 벗겨내지만, 오늘은 그럴 걱정이 없으니 가지를 세척하는 손길이 평소보다 기운차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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